<사기, 인생극장 / 4회> 도행역시(倒行逆施),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소!

기린
2019-09-30 15:19
526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1.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어찌 골육 같은 자식을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비무기는 그런 오사가 아니꼬워 두 사람을 싸잡아 반란세력이라고 고했다. 화가 난 평왕은 오사는 감옥에 가두었고, 태자에게는 사람을 보내 죽이라고 명했다. 태자는 한발 앞서 그 명령을 접하고 도망갔다. 비무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 그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평왕은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사의 두 아들은 조정으로 들라. 너희가 오면 네 아비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큰 아들 오상이 조정으로 나서려 하자 둘째 아들 오자서가 말렸다. 그 길은 세 사람이 모두 죽게 되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달아나자고 했다. 오상이 말했다.

 

-너는 달아 나거라. 살아서 이 원수를 꼭 갚아다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오자서는 스스로 잡혀가는 형을 뒤로 하고 사자에게 화살을 쏘며 도망쳤다. 갖은 고생 끝에 오(吳)나라에 들어간 그는 수완을 발휘하여 오나라 조정에 줄을 대었다. 그리고 초나라를 공격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제대로 초나라를 공격하니 초나라에서 도망친 지 십 육여 년이 흘러 평왕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소왕이 즉위한 후였다. 오나라의 공격에 소왕은 수도에서 달아났다.

 

 

그는 소왕이 도망쳤다는 소식에 평왕의 무덤을 찾았다. 장례를 치른 지 십 년이 넘은 무덤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신을 향해 매를 휘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옛 친구 신포서가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자네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네. 일찍이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이보다 천리에 어긋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자서는 이렇게 응답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전해 주시오.

 

2. 저무는 복수의 시간 앞에서

 

오자서는 십 육년이 흐른 후에야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수는 무덤 속에 있었다. 원수의 아들(초 소왕)을 몰아내고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것으로 원한은 갚은 셈이다. 하지만 오자서는 무덤까지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니 신포서가 지나치다고 할 만하다.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 죽으러 가는 형과 한 약속, 꼭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이후 십육 년은 긴 시간이었다. 도망 길에서 병에 걸려 죽을 뻔도 했다. 너무 배가 고팠을 때는 구걸을 해야 했다. 오나라에서는 왕권다툼의 소용돌이에서 왕좌를 차지하는 쪽에 줄을 대기 위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었다. 초야에서 농사일로 연명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초나라 수도에 이르렀지만 한 발 늦었다. 도망간 초 소왕을 잡기 위해 주변국을 수색하는데 더 이상 시간을 쓸 수 없다. 오왕 합려가 아무리 그를 신임하더라도 한낱 신하의 사정에 맞춰 한정 없이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무덤 앞에 선 오자서는 자신의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복수의 시간이 느껴졌다. 이대로 돌아선다면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사연은 잊히고 말 것이다. 그는 회초리를 들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매질을 시작했다. 「오자서열전」에는 삼백 번을 휘두르고서야 멈추었다고 적혀있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선택에 대해 “작은 의(義)를 버리고 큰 치욕을 갚은 강인한 대장부”였다고 평했다. 신하의 도리를 지키기에 아버지와 형의 억울함이 더 무거웠다. 군신 간의 의리보다 부자간의 정이 더 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정을 뒤로하고 도망쳐야 했던 치욕은 더욱 생생했다. 그것을 갚지 않고는 남은 생을 감당할 수 없는 절실함. 도리를 어기더라도 끝내야 했다. 그래서 오자서의 복수에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 끝내야하는 부득이함이 느껴진다. 그 부득이함은 차마 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야 복수를 끝내게 했다. 사마천이 강인하다고 여긴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3.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오나라로 돌아온 오자서는 합려를 도와 오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서쪽으로는 초나라와 접전하고 북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월(越)나라를 굴복시켰다. 그 와중에 월나라와의 접전에서 합려가 전사했고 그의 아들 부차가 왕위에 올랐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력을 키웠고 마침내 월나라의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월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여 화친을 맺으려는 부차에게 제동을 걸었다.

 

 

-지금이 월나라를 완전히 정복할 시기입니다. 화친은 월나라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그는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는 인물입니다.

 

 승리에 도취한 부차는 오자서의 간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백비는 화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부차는 주변국과 전쟁에 나가면서 월나라는 안중에 없었다. 오자서는 그 때마다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차는 그런 오자서가 불편했다. 왕의 심기를 눈치 챈 백비는 이렇게 참소했다.

 

-오자서는 불만이 많으니 결국은 주변 제후들과 공모하여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전에 오자서를 처리해야 합니다.

 

부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자서에게 칼을 내리며 자결할 것을 명령했다.

 

 

-아첨과 비방을 일삼은 신하의 말로 나에게 칼을 내리다니! 제 아비와 저를 왕으로 만든 나의 공이 한낱 신하의 아첨에 무너진단 말인가. 내 죽어서도 오나라의 멸망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니, 내가 죽으면 눈알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에 걸어다오.

오자서의 마지막 말을 전해들은 부차는 대노했다. 오자서의 시신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말가죽에 쌓여서 강에 버려졌다.

 

 신하는 임금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보필하는 자리이다. 아버지가 죽어나간 자리이기도 했다. 오자서 또한 그 자리에 서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불행을 본보기 삼아 자식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오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바른 길을 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자의 시신을 훼손하는 작은 도리는 어겼을지언정, 신하로써 바른 길을 가는 강인한 대장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오자서가 죽은 이후, 때를 기다렸던 월나라 구천이 공격을 감행했고 오나라는 패배했다. 이 패배는 결국 오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오자서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던 아들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회사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생긴 재해로 처리하려고 했다. 부모가 보기에 그 재해는 안전을 무시한 온갖 불법이 묵인되는 현장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불법을 가리기 위해 사고 무마에 급급한 회사에 맞서 부모는 아들의 장례를 거부했다.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대통령이 위로의 면담을 제안했을 때도 거부했다. 이러한 처사를 두고 항간에서는 자식 장례도 치르지 않는 독한 사람들이라고 수근 댔다. 면담을 거절한 것은 보상금 흥정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 싸운 끝에 아들의 장례를 치른 것은 아들이 죽은 후 육십 이일만 이었다고 한다. 고 김용균씨의 가족 김미숙씨의 이야기이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도리를 어기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선을 넘어서서야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이후 김미숙씨는 ‘다시는’(산업재해 유가족 연대모임)에서 아들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에 주저앉지 않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오자서를 넘어 진정한 ‘복수’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다.

댓글 2
  • 2019-09-30 16:27

    다시 더워진 날씨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서늘함을 주는 글이네요!!

  • 2019-10-08 09:48

    선을 넘을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선이라는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닐거구...
    선만 보지말고 사람을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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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조회 89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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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조회 11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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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3.20 |
조회 148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163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26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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