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인문약방 / 4회> 수면제와 네모창

둥글레
2019-09-0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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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 인문약방/4회]

 

수면제와 네모창

 

강박과 수면제

5월부터 새로운 약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근심이 하나 생겼다. 이 약국은 오래된 의원 옆에 있어서 노인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방문하는 노인들 중 반 이상이 수면제 처방을 받아 온다. 약사 인생에서 요즘 수면제를 가장 많이 조제 투약하고 있는 것 같다.

수면제는 ‘향정신성의약품’(이후 향정)¹으로 분류되고 마약과 같은 법률로 관리된다. 향정을 오남용 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의존성이 생기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의료기관에서는 향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국가기관에서는 의료기관을 불시에 감사한다. 감사가 오든 안 오든 약국에서는 향정 개수를 세서 관리하고 그 조제 내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고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향정을 취급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수면제를 처방받고 있다니! 나는 놀랬다. 물론 수면제는 작용시간이 짧고 부작용을 줄였기 때문에 다른 향정에 비해 안전하다. 그래도 장기간 복용했을 때의 부작용²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정도면 수면제 처방을 남발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나? 특히 약물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수면제를 먹어도 괜찮을까? 최근 살인 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에 수면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만큼 수면제를 구하기 쉬워진 것 때문일까? 걱정스러웠다.

 

 

수면제를 받아 가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며 알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노인들이 수면 장애에 대해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흔히 말하길,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고 한다. 동양 의학에서 볼 때, 노쇠로 인해 정기가 줄면 혈도 준다. 거기에 따라 잠도 자연스럽게 준다. 노인이 되면 활동량이 줄기 때문에 에너지가 덜 필요하니 기나 혈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인이 하루 5~6시간 정도 수면을 하고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잠이 준 것을 큰 병으로 여기고 굉장히 괴로워한다. 통 못 자니 낮에도 힘들고 피곤하다고 호소한다. 한 시간밖에 못 잔다고 얘기하는 분이 있어 더 얘기해보니 좀 과장이었다. 최대한 자정 정도까지 잠을 참았다가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든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일찍 자게 되면 중간에 깨고, 깨고 나면 잠들기 어렵다고 말이다. 또 어떤 분은 수면제에 술까지 마신다고 하였다. 술도 수면제처럼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면제 부작용을 키워 위험할 수 있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지만 어쩔지 걱정이다.

특별한 일거리도 없고 질병이나 노화로 노인들은 낮동안 움직일 일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면 낮잠을 자기 쉽다. 그러면 밤에 잠이 더 안 온다.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 더욱 졸린다. 악순환이다. 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서 노인들도 건강 정보를 넘치게 접하고 있다. ‘보통 성인이라면 하루 7~8시간이 적정한 수면시간이다’라고 다들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이하로 잠을 자게 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걱정이 많다.

 

수면 장애 = 불면증?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면 모두 불면증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의학적으로 볼 때 수면 장애와 불면증은 같은 것이 아니다. 잠들기 힘든 경우(입면 장애), 잠을 자다 중간에 자주 깨는 경우(수면유지 장애), 한 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경우(재입면 장애), 너무 일찍 기상하는 경우(조기 각성), 숙면을 취했다는 느낌이 없는 경우(숙면 장애)를 통틀어서 수면 장애라고 부른다.

『수면 장애와 우울증』(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8)에 따르면, 불면증은 잠잘 때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면장애와 달리 낮에도 수면에 대한 불안감이나 괴로움이 계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또 작업능률이 떨어진다고 자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실수도 적고 작업능률도 그다지 저하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불면증은 밤의 병일뿐만 아니라 ‘낮 시간 동안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면 장애와 불면증은 별개이다.

노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에 대해, 결국 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면 장애는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수면 장애 중 한 가지라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건강 상식이나 건강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 강박을 만들고, 단순한 수면 장애가 불면증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사실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적정 수면시간은 다르다. 수면 부족이 심하지 않다면 수면 장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시적 수면 부족으로 인한 수면 부채는 다음 날 잠을 더 자면 해결된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교유서가, 2016)에서 로저 에커치는 근대 이전의 유럽 사람들은 잠을 두 번에 걸쳐서 잤다고 한다. 연속적으로 자는 잠이 질이 높다는데 어찌 된 일일까? 그 시절 사람들이 첫 번째 잠에서 깨면 한밤 중이었다. 그들은 일어나서 소변을 보거나 사랑을 나누고 기도를 하는 등 여러 일을 했다. 그러나 두 잠 사이의 고독한 시간에 더 많이 한 일은 명상이었다.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거나 자신이 꾼 꿈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내적 자아를 만났다.

이 책 속에는 선사시대의 잠의 조건을 재현해 본 실험이 나와있다. 매일 밤 14시간 정도 인공조명 없이 몇 주에 걸쳐 살게 하자, 실험 참가자들은 산업화 이전 시대 사람들처럼 자주 끊기는 잠의 유형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수면 장애로 불리는 단속적인 잠은 사실 태곳적부터 동물과 인류에게는 보편적이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는 연속적으로 잠을 자게 되었을까? 로저 에커치는 근대 산업화 이후라고 그 시점을 꼭 집어서 말하고 있다. 18세기 상업주의와 초기 산업화에 의해 밤에도 상점과 시장은 문을 열었고, 공장에서는 종일 작업을 하여 생산성을 향상했다. 거기에 인공조명이 널리 보급되면서 밤은 점점 더 밝아지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된 인류는 그럴수록 중단 없는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한다. 연속적인 잠의 역사는 실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어느덧 ‘정상’이라는 범주를 꿰차게 되었다.

 

 

 

네모창이 밝히는 밤

근대화 이후, 24시간 중단없는 문화가 연속적으로 자는 잠이 정상이라는 믿음을 만들었고, 수면 장애에 대한 강박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밤문화와 야간근무는 이제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디지털 문화는 전 지구촌적인 연결과 끊기지 않는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고 언제든지 접속하라고 한다. 그래서 잠을 못 이뤄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과 밥먹듯이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영상, 게임, 톡 등으로 휴대폰, 컴퓨터 등 네모창의 빛은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신체활동이나 외부활동보다는 습관적으로 손바닥 가까이 있는 네모창을 켜는 것이 편하다. 밤에 잠을 안 자니 낮동안은 정신이 흐리멍덩하다. 네모창 문화는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린아이들도 노인들도 네모창에 열중이다. 나도 내 가족도 모두 네모창에 빠져 산다. 유치원 다니는 조카는 유튜브 키즈에 눈을 뗄 줄 모르고, 70대 노인인 엄마도 친구들이 보내온 톡을 보느라 밤 깊은 줄 모른다.

하지만 아시는가? 네모창들에서 나오는 빛들이 몸속에 열을 만들고 그 열이 진액을 말린다는 것을. 또 몸의 진액을 만드는 물은 물에 해당하는 시간인 해시(亥時,서울기준으로 밤 9시 반~11시 반)와 자시(子時, 밤 11시 반~ 새벽 1시 반)에 자면 채워진다. 요즘 이 시간에 자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진액은 더욱 고갈된다. 이렇게 되어 동양 의학에서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는 상태인 ‘음허화동(陰虛火動)’이 된다. 

음(물)이 부족하면 몸속의 불(열)을 끄지 못해서 내부 장기가 뜨거워지고 각종 증상이 생긴다. 특히 물 부족은 몸속의 불을 주관하는 심장의 기능을 조절하지 못해서 두통, 불안,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 더 심해지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번질 수 있다. 또 음허는 혈허로 이어지는데, 혈허 증상 중 빈혈은 주간에 각성이 잘 되지 않아 쉽게 카페인에 의존하게 한다. 카페인은 이뇨작용으로 몸에서 물을 빼면서 몸속의 열을 더욱 조장한다. 게다가 카페인은 철분 흡수를 저해하기 때문에 빈혈을 악화시킨다. 

 

 

『수면 장애와 우울증』에서 시미즈 데쓰오는 수면 부족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수면 부족이 감정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면 부족에 처한 사람은 좋은 것(긍정적인 것)이거나 중립적인 것은 잊어버리는데 반해 나쁜 것(부정적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이 뇌의 전두전야의 활동을 떨어뜨리고 전두전야가 평소 억제하고 있는 편도체의 활동을 억제할 수 없게 된 이유다. 편도체는 불쾌한 정동의 중추이다. 결국 수면이 부족하게 되면 불쾌한 정동을 억누르기 어렵게 된다. 설명하는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동양 의학이나 서양 의학이 비슷한 결론을 내고 있다.

 

 

수면제와 네모창을 대신할 일상

한 할머니가 수면제를 받아가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매일 수면제를 먹지는 않지만 수면제가 집에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이 네모창이 없으면 불안하다. 더욱 밝아진 인공조명과 총천연색의 빛을 내뿜는 온갖 전자기기들에 둘러 쌓여 사는 삶. 우리는 밤을 더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밤을 잃었고 그 대신 강박과 중독을 얻은 것 같다.

『동의보감』에는 이도요병(以道療病)이라는 말이 있다. 도로써 병을 치료하라. 질병을 고치는 데는 일상의 습관을 고치는 것이 침이나 약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습관을 고치는 것은 도를 닦을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솔직히 일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수면제 등 약을 먹는 게 훨씬 편하다. 당뇨, 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들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질병관리에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다. 약이 있으니까 에잇! 하면서 식이조절을 못하고 달고 짠 음식을 먹어버린다. 약에 의존하면서 질병에 점점 수동적이 되어 간다.

하지만 최근 수면 의학도 수면제보다는 일상의 루틴을 바꿀 것을 권하고 있다. 수면제가 수면 장애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삶만이 근본적 치료이다. 하지만 네모창에 대한 중독과 그것이 주는 불안은 그 기준도 모호하고 치료약도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에 네모창을 없앨 수 없고 네모창이 주는 이익도 분명 있다.

나의 경우, 공부를 하고 글을 쓸 때 노트북이 필수이다. 또 휴식을 취할 때는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거나 휴대폰으로 SNS를 보거나 포탈에서 뉴스를 본다. 내 즐거움은 먹는 것과 네모창에 집중되어 있다. 내 일상이 심플한 것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내 즐거움이 왜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즐거움이 너무 수동적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와 많이 다른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당신도 나도 각자의 특이성들을 잃어버리고 너무 동질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가 밤을 잃으면서 함께 잃어버린 것이 ‘낮’과 ‘밖’이라고 생각한다. 밤에도 낮에도 몸은 실내에 갇히고 장시간 네모창과 대면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약국에는 비타민 D 제제³의 판매가 급격하게 늘었다.) 수면 장애 치료 중 하나는 낮에 충분히 햇빛을 쬐어 생체 리듬을 살리는 것이다. 낮의 빛과 활동성이 줄어든 만큼 우린 그 활동성을 구성하는 여러 관계와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취미, 이벤트 같이 거창한 거 말고라도 네모창 밖에서 능동적 즐거움을 만들 수 있는 루틴은 무엇일까? 

 

 

최근 나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는데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다. 요가를 하고 나면 몸도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야행성인 내게 아침 요가는 스킵되기 일쑤다. 일단 이 요가가 습관이 될 때까지 노력해 보려고 한다. 아침 요가가 루틴으로 즐거움이 되면 야행성인 내 일상에 인공의 빛 대신 햇빛이 더 들어올 것이다. 햇빛과 함께 어두운 밤도 좀 더 찾아들 것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상의 팁을 알려드리며 글을 마치려 한다. 아래는  『수면 장애와 우울증』에서 발췌했다. 

 

  1. 수면 시간은 사람에 따라 제각각, 낮에 졸려서 힘들 정도만 아니면 충분하다.
  2. 자극적인 것을 피하고(e.g. 오후 3시 이후 커피 마시지 않기) 자기 전에는 자기 나름대로 긴장 완화 방법을 쓴다(가벼운 독서, 음악, 미지근한 물로 목욕, 근육 이완 스트레칭 등).
  3. 졸음을 느낀 후 잠자리에 든다. 취침 시간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다.
  4.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5. 빛을 이용하여 양질의 수면을 취한다(낮에는 햇볕을 쬐고 밤에는 조명이 너무 밝지 않도록 한다).
  6.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습관을 갖도록 한다.
  7. 낮잠을 잔다면 오후 3시 이전, 20~30분으로 한다.
  8. 수면이 깊지 않을 때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
  9. 취침 전 음주는 깊은 수면을 방해하고 도중각성의 원인이 되니 삼간다.NM

     

     

     

    주)

    1. 향정은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환각, 각성, 수면 또는 진정 작용을 한다. 

    2. 향정의 장기 복용시 가장 큰 부작용은 의존성이다. 의존성이 생겼을 때 복용을 중단하면 반동성 불면증, 비현실감, 사지의 저림 및 무감각, 환각, 간질성 발작, 신체적 접촉에 대한 과민성, 두통, 근육통, 극도의 불안, 긴장, 초조, 혼동, 흥분성 등의 금단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3. 비타민 D는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서 자연적으로 생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비타민D 부족이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글 :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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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댓글 2
  • 2019-09-03 12:07

    공감이 됩니다.
    정보는 넘치고 자기 스스로 주도적으로 삶을 꾸리지 않는 노후의 모습이 우울하네요.
    정보와 지식
    앎과 삶의 실천.
    잠도 그런거였군요.

    먹고.자고.놀고.일하고 놀고....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안되면 삐긋거리리게 되니 늘 조화롭게 균형잡아가도록 해야겠네요.
    잘 앍었습니다.

  • 2019-09-09 09:50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그리고 밤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사유가 총 망라된, 매우 지적인 글이네요. ^^
    밤을 잃어버리면서 영성도 잃어버리고,
    인간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자기 존재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좋은 글, 저도 잘 읽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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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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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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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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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72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75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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