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인문약방 / 3회] 바이오 기술의 과속 스캔들

둥글레
2019-07-1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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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 인문약방 / 3회]

 

 

바이오 기술의 과속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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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바이오 스캔들

최근 한 유전자 치료제가 큰 스캔들에 휩싸였다. 국내 최초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 주(이후 인보사)이다. 인보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이다. 그러나 79일 자로 식약청은 인보사의 허가취소를 확정했다. 인보사는 연골을 재생하기 위한 동종 연골세포(1)와 염증과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성장인자 유전자(TGF-beta1 gene)가 도입된 연골 세포(2)로 구성된다. 그런데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로 밝혀졌다. 식약청의 조사 결과, 개발사에서 허가서류에 허위정보를 기재했고,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임을 알면서도 숨긴 것이 드러났다. 식약청은 이 회사를 형사 고발했다. 식약청의 허가취소 발표 후 이 개발사의 주식은 거래가 중지되었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해가 예상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미 이 약을 투여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발현될지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 도입을 위한 벡터1)로 사용된 바이러스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 유전자가 원치 않는 위치에 도입되면 오히려 종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인보사의 경우는 벡터나 유전자 문제는 크게 없어 보이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유전자가 도입된 세포가 신장 세포, 더욱이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할 수 있도록 형질 전환된 세포(GP2-293 세포)라는 것이다. 물론 개발사는 방사선 조사로 세포의 활성을 없앴고, 허가 자료는 바뀐 신장 세포를 근간으로 만들어져서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인보사의 2액은 연골세포로 디자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GP2-293 세포를 상정한 안전성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15년간 인보사를 투약한 환자들을 추적 조사한다는데 약 개발비에 맞먹는 큰돈이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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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 사건 이전에도 바이오 스캔들은 있었다.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 조작 사건이다. 난자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의 내용은 거짓이었다. 또 최근 미국에서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회사가 사기를 친 것이 발각되었다. 이 회사는 피 한 방울로 200여 개의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약 1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내부 고발로 그 기술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바이오 의약품, 특히 유전자를 이용하는 경우는 개발도 어렵지만 거기에 따른 검증도 어렵다.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제의 역사가 짧고 그에 따른 충분한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은 빠르고 그 범위도 넓어지고 있어서 생명윤리 문제도 늘 제기된다. 그러니 허가를 주는 관청도, 투자자들도, 의료인들도, 환자들도 판단이 잘 안 선다. 허위나 거짓이 있더라도 밝혀내기가 힘들다. 바이오 분야의 스캔들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유전자 변형된 일상 (Genetically Modified Life)

바이오 스캔들을 보면서 그들이 우릴 속였다는 사실에만 분개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관련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바이오 분야 특히 유전자 분야는 어렵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봐도 자세히 알려고 하기보다는 욕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정보와 책을 읽었는데 역시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현재 유전자 분야의 발전 사이에 갭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난 1세대 바이오 의약품까지 배우고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2세대와 3세대 바이오 의약품을 접하게 되었다. 약의 기전이야 알았지만 그 바탕 지식인 유전자 조작(유전자 변형,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 바이오 의약품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인슐린 주사가 1세대 바이오 의약품이다. 휴먼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장균 세포 내에는 플라스미드2)라는 고리 모양의 DNA가 있다. 이 플라스미드 한 부분을 잘라내고 그 부분에 인슐린의 DNA를 접합하여 대장균에 넣는다. 이 대장균이 번식하면서 변형된 플라스미드가 인슐린(단백질)을 생산한다. 이 배양액에서 인슐린만을 분리 정제하면 의약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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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항체 치료제와 3세대 세포 치료제 및 유전자 치료제는 더욱 정교해지고 발전된 형태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 특히 이 2, 3세대 치료제는 주로 암, 유전병, 자가면역질환 등 치료하기 힘든 질병들을 타깃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런 의약품들이 아주 드물게 사용되겠거니 짐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의약품 시장은 바이오 의약품이 견인하고 있다. 세계 의약품 판매 상위 10위 안에 항체 치료제들이 반 이상일 정도로 판매량이 많아졌고, 국내에도 40개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도 마찬가지로 십수 종이 국내에서 허가되었다.

유전자 조작은 비단 의약품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농업 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기술이 쓰이고 있다. 이른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즉 유전자 변형 생물체이다. 이는 인슐린 생산에 쓰인 기술과 같다. GMO 첫 사례는 1994FDA(미국 식품의약청)의 승인을 받아 개발된 무르지 않는 토마토다. 이후 옥수수, , 유채, 감자 등 많은 작물들이 GMO로서 생산되고 있다. 유전자 변형은 식품, 의약품, 생활용품이 되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GMO나 바이오 의약품에 사용되는 유전자 변형은 실험실에서 조작된다. 인위적으로 세균의 유전자와 식물의 유전자를 접합하기도 하고, 사람의 유전자와 바이러스 또는 동물의 유전자가 접합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유전자 변형체가 생물로 전환된다. 이 유전자 변형된 생물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기도 하고 한 세대에 국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변형이기에 염려가 된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 변형이 우리 인체와 삶에 어떤 변형을 가져올지 검토하고 추적할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플라스틱 자궁 공학 또는 새로운 우생학?

인위자연에 어떤 간극이 있을까? 유전자 조작이라는 인위가 주는 공포와는 별개로 사실 모든 생물의 세대는 변이체와 돌연변이체를 생성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다양성과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돌연변이는 생물학적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변이들의 축적이 진화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유전자 공학의 발전도 당연히 음과 양이 있다. 예컨대 항암제 분야에서는 바이오 의약품의 약진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기존의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법은 너무 독성이 강해서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이 심했다. 하지만 특히 항체 치료제의 경우는 암세포만을 표적 하여 치료하기 때문에 정상 세포에 대한 영향이 적어 부작용이 줄었고 항암효능도 좋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는 것은 위험하다. 인보사의 경우 성장인자 유전자를 넣어준다고 하지만 골관절염에 관련된 유전자가 유전병처럼 하나일 리가 만무하다. 대부분의 질병은 여러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있다. 또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술을 시행해서 유명해진 BRACA 1 돌연변이 유전자의 경우는 불완전한 침투도를 갖는다. 무슨 말이냐면 이 돌연변이를 가진 모든 여성이 유방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유방암도 여러 원인으로 발병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어떤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그 병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독특한 능력이나 특성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 유전자에게 어떤 질병을 일으켰다는 오명만을 씌우기는 어렵다. 만약 그 유전자를 제거하면 그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그 특성은 없어질 것이다.

현재 유전 공학은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까지 와있다. 특정 변이 부분을 효소를 이용하여 잘라내고 그 부분에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안정화시키는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에서 한편 섬뜩한 느낌이 든다. 유전적 진단과 그에 따른 유전적 개입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치의 우생학도 유전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에 생겨났다. 그때는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전자를 내세워 결함 있는(?) 사람들을 수용소에 수용하고 불임화 수술까지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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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생학을 얘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일까? 내 여동생은 첫 아이를 늦은 나이에 임신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노산이라며 이런저런 검사를 시행했는데 마침내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유전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유전자 이상이 있으면 낙태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양수 검사를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행하는 양수 검사가 우생학적 생각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전자 가위기술은 종국에는 인간 유전체 편집을 향하고 있다. 즉 인간 배아 상태에서 돌연변이를 찾아내서 교정하거나, 아니면 정자나 난자를 교정하는 유전자 수술을 시행한 후 인공수정을 하거나. 결국 우리의 상상이 다다른 곳은 형질 전환된 인간의 탄생이다. 그야말로 나치 우생학이 바라던 바를 실현하게 될 수도 있다. SF 영화 속에 나오는 특이성이 사라진 균질화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이반 일리치는 의료와 결합된 생명공학을 플라스틱 자궁의 공학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심리적, 물리적 환경을 전문적으로 변화시키는 공학 프로그램이 결국은 인간의 자율성을 완전히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리치가 염려했던 일들은 유전공학과 의료의 만남으로 더욱더 전면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범죄자적 비정상과 비사회적 행동은 심리검사로 미리부터 점쳐지고

댓글 8
  • 2019-07-21 10:49

    저 또한 인보사사태를 보며, 난 문제없이 잘 하고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생물학 실험을 할때면 세포주의 출처를 명확히 하지않을 때가 종종 발생하기도하거든요. 그렇다고 인보사사태를 절~대 옹호하는거 아닙니다. 반성합니다ㅠ

    삶을 모두 유전자로 환원하면 안된다는 말 와닿네요. 전 유전공학을 전공했는데 그 당시만해도 유전자가 모든걸 해결해줄수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한개의 유전자만으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절대 설명할수없습니다. 한개를 없어거나 늘리면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이 크고 작게 질서 정리를 다시 하게되는데, 이 영향이 생물체 여러 곳 또는 시간적변화에 의해서도 다르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의 전체 흐름도 바뀌고 있습니다.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라고해서 한 유전자를 넘어서서 유전체, 단백질체, 단백질변성학체등등 여러단계를 고려하고 다양한 전산학,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을 이용하여 생명현상을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또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듯이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항상 경계성은 지녀야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전 개인적으로 생명현상이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 인류에 큰 도움이 될꺼라고 생각하는 비판적 생각 전혀없는 생물학자거든요ㅠㅜ

    사실 인문학 공부하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를 성찰한다는게 너무나 어렵게 와닿아서 전 사실 안하고있는 상태입니다ㅠ 조금 더 내공이 길러지면 차근히 접근해 싶다는 생각뿐.... 그 전에 둥글레샘 글을 보며 오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되네요. 

    감사합니다^^

    • 2019-07-21 12:31

      연차 내고 낮에 파지사유에서 출몰했던 며칠 전 금요일에도 

      짬을 내어 실험실의 미생물 살피러 회사에 다녀오는 미지님을 보았습니다.

      차근차근 공부의 내공을 쌓아가며

      조만간 자신이 일하는 분야를 성찰하는 미지님을 보게 되겠군요!!

      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상입니다~~

      • 2019-07-22 10:08

        저도 그런 날을 기대해봅니다^^ 내공을 키우자 으샤으샤~!

        위에 생물학자라고 쓴게 부끄러워 수정하고싶은데 비번을 까먹었네요~^^

        그냥 생물학하는 사람으로 봐주세요~ㅎㅎㅎ

    • 2019-07-23 10:48

      오오 미지님의 전공이 유전공학인 줄 몰랐네요.

      이번에 유전자 관련 책들 읽으면서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생세미나에서  읽으려고 하는데 함께 하심 차암 좋겠다는 생각이...

      직장땜에 어려우시겠죠? ㅋ

      언제 한 번 함께 얘기해봐요~

      • 2019-07-23 23:11

        아 같이 공부하면 좋은데... 아쉽네요~~

        세미나후기라도 열심히 읽고 소통해야겠네요~^^

  • 2019-07-23 19:11

    유전자...

    우리 몸 뿐만 아니라...식물들과 동물들도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9-07-24 20:58

    유전자는 우리가 수세월의 유산임을 알려주다는게 더 와닿아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닌듯..ㅎㅎ

  • 2019-07-26 01:45

    예전에 르몽드에서 유전자 가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다시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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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조회 90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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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조회 113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조회 148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163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26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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